잡문 2024. 2. 4. 13:11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말하다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의 저자 정성문 작가와 도서출판 예미의 황부현 대표가 최근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황부현 대표(이하 황) : 발간을 축하한다. 근래 들어 노인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고 최근에는 정치권도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 등으로 시끄럽다. 언제 집필한 것인가.

 

정성문 작가(이하 정) : 소설을 구상한 시점은 십 년 전쯤이다. 당시 회사에서 하던 업무가 자금 운용이었다. 기관투자가였는데, 소위 말하는 ‘큰손’이었다. 당연히 여러 증권사로부터 이코노미 리뷰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 봤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고령화와 채권 투자 전망’이던가, 그런 제목의 리포트였다. 그리 길지 않은 보고서였는데, 자료를 읽는 순간, 앞으로 산업과 투자 방면에서 어마어마한 실버 마켓이 열리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 사업할 재주는 없어서 대신 글로 써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시놉시스만 써두고 있었다. 집필을 시작한 것은 퇴직하고 나서다. 2년 전이다.

 

황 : 소설 속에는 최근 화제가 되는 노인복지 문제뿐만이 아니라 노인의 성(性), 황혼이혼, 노인범죄, 존엄사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이 각 챕터의 주제로 등장한다. 자료 수집을 꽤 많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던데.

 

정 : 구상을 하고 바로 소설을 쓰진 못 했지만, 그때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도서를 구입하고 자료 수집도 시작했다. 소설 속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다. 가령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주를 훔치고 6개월 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고받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기사를 참조했다. 우리 사회의 우울한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늙어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꼰대’가 늙은 ‘꼰대’ 되는 것

 

황 : 노인들을 직접 만나서 취재하지는 않았는지.

 

정 : 어떻게 만나지 않았겠나. 주변이 노인인데. 작가들 모임에 나가더라도 전부 노인뿐이다. 일가에 어르신들도 많고. 아파트 경비분들도 전부 노인이지 않은가. 일부러 만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겉은 추레해 보여도 젊었을 때 잘 나가던 분들도 많더라. 잊고 지내는 진실이지만, 노인은 젊은이들의 미래다.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지금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노인이라고 해서 다 ‘꼰대’는 아니더라. 사고가 젊은이들보다 열린 분들도 계신다. 여러 어르신을 만나고 깨달은 점은 늙어서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꼰대’가 늙은 ‘꼰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황 : 노동 문제를 다룬 전작 <욕망의 배 페스카마>도 그렇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정 : 소설은 자기 내면의 거울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를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도 못 하는 일을 어떻게 소설로 하겠는가. 다만 소설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문제는 문학뿐만이 아니라 여러 예술 장르의 훌륭한 소재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라는 작품은 프랑스군의 마드리드 양민학살을 증언한 작품이다. 피카소도 6,25를 배경으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고발 작품을 남기지 않았는가. 사회 문제란 결국 인간의 문제다. 예술은 인간을 다루는 것이 아닌가.

 

황 : 문학을 통해 사회 변혁을 꿈꾸는가?

 

정 : 아니다. 말한 바와 같이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를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문학 순수주의자라 문학을 그 어떤 가치보다 높이 친다. 내 문학의 소재로 사회적 현상을 다룰 뿐이다.

 

황 : 스스로 사회파 작가라고 하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사회과학소설이라 부르던데.

 

정 : 극단적으로 자기 내면세계를 파고드는 작가들도 있지만 사실 나 말고도 많은 작가가 작품 속에서 사회 현상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알고 보면 거의 모든 작가가 사회파다. 나는 그렇게 본다. 데뷔 이후 발표한 두 작품집이 공교롭게도 사회의 부조리를 다뤘지만, 계속해서 이런 류의 소설만은 쓸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주보다 깊은 것이 한 치 인간의 내면이다. 인간의 내면을 다룬 작품도 쓰고 싶다. 원래 그렇게 시작하기도 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가 사회과학소설인 것은 맞다. 소설이 과학이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과학적 소재로 쓴 소설이라는 말이다. 사회과학소설은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 등에 의해 오래전부터 서구에서는 하나의 장르다. 하지만 신문학 역사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장르다.

 

황 : 그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정 : 우리의 불행한 과거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소설 속에 사회적 현상을 담으려면 정치, 경제, 사회의 어두운 면을 피할 수 없는데, 우린 오랫동안 정치적 소재가 금기였다. 정치적 문제를 다룬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확산되지 못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문제를 쉽게 쓸 수 있는 문학적 환경은 아니다. 경제적 현상은 조금 다른데. 작가들이 이 방면에 전문성이 없다 보니 쓰기 어려운 것이다.

 

황 : 우리 문학의 사소설적 경향과도 관계가 있는가.

 

정 : 물론이다. 말한 바와 같이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를 다루려면 이 방면에 대한 경험과 아주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소설을 쓰려면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보니 자꾸만 소재를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사소설이 우리 소설의 주류가 된 것이다.

 

황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로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보자. 노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이기도 한데, 왜 30여 년 후의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했는가.

 

정 :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떠들고 있다. 그런데 당면 과제라는 건 지금까지 이 문제를 방기했다는 말과 같다. 오래전부터 인구 추이를 보고 이에 대비했다면 노인 문제가 지금의 당면 과제이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잘 준비해야 30여 년 후에 소설 속의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30여 년 후의 세상을 그렸지만,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30년 후의 일이라고 해도 결국은 지금의 세상을 그린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알레고리다. 사실 이 소설을 처음 준비할 때는 40년 후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변하는 게 하나도 없더라. 30여 년 후가 멀리 있을 것 같지만, 사회적으로는 순식간이다.

 

국내 최초의 뮤지컬 소설

 

황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읽어보면 1970, 80년대에 젊은이들의 마음과 귀를 사로잡았던 여러 히트곡들이 나온다. 각 노래 마다 사연이 있던데.

 

정 : 소설 속 인물들이 1980년대에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과거 장면에서 그런 노래들이 쓰였다. 소설을 쓸 때 뮤지컬 제작이 가능하도록 그렇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노래 저마다의 의미가 소설의 진행과 맞아야 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1987년에 영국 밴드 커팅 크루(Cutting Crew)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I Just Died In Your Arms’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찾아왔답니다 / 주변에는 상심한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 난 여기서 빠져나갈 쉬운 길을 알지 못해요’ 이 가사는 주인공 김한섭의 심경과 고민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제목을 번역하자면. ‘난 방금 당신의 품에서 죽었어요’정도가 되는데 김한섭의 연인인 권선희가 마지막에 김한섭이 품에서 죽지 않는가. 이 곡은 이 소설의 주제가나 마찬가지다.

 

황 : 많은 고민을 하며 곡 선택을 했겠다. 다른 소설에도 노래가 가진 의미를 메타포로 사용한 사례가 있는가.

 

정 : 솔직히 말하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노래를 먼저 생각하고 소설을 지은 것이 아니라 소설을 써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부분에 어울리는 곡들이 떠올랐을 뿐이다. 나는 학창 시절 빌보드 차트를 줄줄 외우던 빌보드 키드였다. 차트 순위뿐만 아니라 노래의 가사 등도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매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가요 역시 사회의 거울이 아닌가. 다른 소설에 이런 사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소설 가운데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는 국내 최초의 뮤지컬 소설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소설의 생명은 고유성과 독창성

 

황 : 굉장히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엄사 문제를 다룬 쳅터 ‘고통 없이 도와 드립니다’는 방송 대본 형태로 썼다. 이유가 있는가.

 

정 : 존엄사 문제를 다루려면 소설이라도 죽음의 의미에 대한 지루한 설명이 들어가야 한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또한 이 챕터는 하나의 독립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설 전체에서 보면 이질적인 부분이다. 노인들이 방송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형태로 구성하면 죽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고 이 챕터를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끼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게 무슨 소설이냐는 평을 받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영어로 소설을 뜻하는 ‘novel’은 새롭다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novelist’란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소설의 생명은 고유성과 독창성이다.

 

황 : 등단하고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창작집을 두 권이나 발표했다. 다음에 계획하는 소설은?

 

정 : 퇴직하고 2년 정도 시간이 있을 때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2,500매 가까이 쓴 것 같다. 지금은 다시 직장을 얻어 그렇게 쓰지 못하지만 늘 꿈을 꾸고 산다. 소설은 결국 꿈을 쓴 거 아닌가. 아주 많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꺼내 달라고 꿈틀대고 있다. 글쎄, 언제 다 끄집어낼 수 있을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도 전에는 한낱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사회파 작가답게 사회적 문제를 다룰 소설도 있고 역사 소설, 판타지도 있다. 특정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순문학? 이런 말은 정신 승리일 뿐이다. 모든 소설은 재미있게 잘 쓴 소설과 재미도 없고 못 쓴 소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황 : 둘이서 커피를 네 잔이나 마셨다. 인터뷰 감사하다. 이제 소주를 마시러 가자.

 

2024.2.3

 

https://youtu.be/J07wmyi57oc?si=wtIR1bdGE20ssXgF

 

알라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aladin.co.kr)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어느 가상 공화국을 배경으로 머지않은 미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문제를 그린 소설로서 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1위라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풍자한 알레고리다.

www.aladin.co.kr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정성문 - 교보문고 (kyobobook.co.kr)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예스24 (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