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와 ‘서부전선’의 차이

'사도'의 한 장면

 

지난 달 23일 개봉한 영화 사도가 상영 2주 만에 5백만 관객 동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사도는 지난 30496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오늘(1일) 중으로 5백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된다.

 

사실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와 TV 연속극 등으로 숱하게 제작되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드라마의 소재로서 아들을 죽인 아비의 이야기만큼 작가의 상상력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팩션의 시대에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비교적 정사와 고증에 충실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영화는 크레딧을 올리면서 참고한 문헌을 소개한다.

 

물론 아무리 기록에 충실했다고 한들 영화는 영화이며 허구다. 작가의 상상력이 기록의 빈 공간을 파고들 수밖에 없으며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사도세자의 진실을 두고 각자에게 유리한 기록을 내세워 옥에 티를 찾듯 영화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그 보다는 연일 흥행몰이를 하는 이 영화가 전하는 바다.

 

이 영화를 중학생 아들과 함께 본 한 학부모는 공부하지 않는다고 자식을 죽이는 아비가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관람평을 인터넷에 올렸다.

 

중학생의 무지를 탓하기 앞서 사실 이 영화만 놓고 보면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불분명한 것은 맞다. 이 영화는 전개의 상당 부분을 관객들의 역사적 상식에 의존한 작품이다. 따라서 앞의 중학생처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 가령 외국인이 이 영화를 본다면 부자 갈등의 원인을 공부 때문이라 판단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감독은 임금과 세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지만 비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부자 갈등의 원인을 보다 폭넓고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부전선'의 한 장면

 

지난 주(9.24) 개봉한 천성일 감독의 서부전선은 남북한 병사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동질성 회복을 그린 작품이다. 휴먼 드라마이며 전쟁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코믹터치다. 제작에 공도 들여 영화에 사용된 전차를 구동 가능하도록 실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일주일이 다 되어 가도록 52만 관객을 동원하든데 그쳤다. 이주가 지나야 겨우 백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추세이며, 일 평균 관객수는 사도의 대략 오분의 일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실 서부전선이 전하는 메시지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고전,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이래 전쟁영화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전쟁은 벌어져서는 안 되는 나쁜 짓이며, 동원된 병사들에게 전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도가 동일 소재의 숱한 드라마와 영화를 가지고 있다면 서부전선은 선우휘의 단독강화’(1959)라는 소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남북한 병사가 오해를 풀고 결국 동질성을 회복한다는 주제를 다룬 반공이 제일의 국시이던 시절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다.

 

한마디로 영화 사도서부전선은 신선하지 않다. 두 작품이 다 새롭지 않은데 관객의 반응이 큰 차이를 나타내는 건 왜 일까?

 

'명량'의 한 장면, 수험생용 사극 같지만 실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1,232만명)의 빅히트 이래 관상’(2013, 914만명), ‘역린’(2014, 385만명) 등 역사적 사실성이 부족한 팩션 사극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팩션의 전성기가 열렸다. 그러나 팩션은 올 상반기 개봉한 간신’(111만명)순수의 시대’(47만명)에 이르러 일단 주저앉은 양상이다. 관객들이 무늬만 사극에 실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팩션의 시대가 가고 다시 정사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명량’(2014, 1,761만명, 실은 배설 장군에 대한 평가와 앞서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파괴된 거북선의 등장 등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은 관객 동원 역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이와 같은 트렌드를 제대로 읽은(혹은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진) 작품이다.

 

반면 코믹 사극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천성일 각본)으로 큰 재미를 봤던 천성일 감독은 다시 한번 코믹 사극(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사극이라 부르기는 그렇지만)을 내놓았지만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데 실패했다. 올 초 개봉한 코믹 사극인 조선 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역시 전 편 만큼의 흥행은 기록하지 못했다.

 

그럼 팩션과 코믹 사극의 시대는 간 것일까? 사실 누구도 모르는 것이 바로 시장의 트렌드다. 엿장수 마음인 것이다.

 

201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