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친일파가 동급?

 

 

지난 광복절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은 우리 역사가 해내지 못한 친일파 처단을 다루고 있다.

 

친일 경찰 염석진(이정재 분)은 반민특위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독립군 저격수 출신의 안옥윤(전지현)에게 살해당한다.

 

비록 영화를 통해서나마 관객들은 염석진의 죽음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어차피 영화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통해 대리 경험과 만족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암살은 영화라는 장르에 아주 충실한 작품이다.

 

 

암살에 이어 무서운 속도로 천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는 베테랑’(감독 류승완)은 못난 재벌 때리기이다. 살해를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일개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에게 걸려 망신살이 뻗친다.

 

형사가 재벌 3세와 맞장을 떴다. 그러고는 살인교사, 마약복용, 성매매, 도로교통법 위반..(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다) 등의 혐의로 3세를 입건한다. 드러난 죄목이 이렇다는 것이고 실은 법률이 정한 죄란 죄는 모조리 저질렀을 것만 같다.

 

말단 형사에게 걸려든 재벌 3세의 이야기를 보고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말도 안 되는 영화라고? 영화를 머리로 이해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역시 현실과는 다른 영화 베테랑은 관객들에게 오르가슴을 선사한다.

 

어쩌다 우리 시대의 재벌에 대한 인식이 친일파 수준에 이르게 되었을까?

 

비록 크레딧을 올리며 절대 사실무근임을 강조했지만 영화 베테랑을 보며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재벌의 추태를 연상하는 일은 쉽다. 솔직히 쓰는 이는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땅콩이 먹고 싶어졌다.

 

영화에서와 달리 친일파들은 암살당하지도 처벌 받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조태오는 아마도 보석으로 풀려날지도 모른다. 아니 불구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서도철이 수갑을 채우자 조태오가 이거 푸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묻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실 공공의 적을 비롯하여 이 전에도 베테랑과 비슷한 설정을 지닌 영화는 여러 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 소재의 영화가 끊이지 않고 제작되는 건 아마도 현실에서 단 한 번도 죄지은 재벌들에게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재벌들의 비위가 또 드러날 것이고 영화는 다시 사실무근임을 강조하면서 현실 비틀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런데 왜 현실에는 서도철이 없는 것일까?

 

2015.8.20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