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 해안에서 표류하다?

 

 

지구로부터 600km, 거기 우주 맞아?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과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있는 곳은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대기권의 상단에 위치한 곳이다.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소리도 산소도 중력도 없는 곳이며 기온은 125도에서 마이너스 100도 사이를 오르내리니 인간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보면 발 아래로 또는 머리 위로 600km 떨어져 있는 지구가 보인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지구에서 본 달보다 아름답다.

 

지구에서 600km 떨어진 거리란 도대체 얼마나 먼 거리일까?

 

간단하게 비교하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약 384,000km라고 하니 600km란 사실 우주공간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거리다.

 

서울서 부산까지 거리가 약 450km라고 하고 서울서 평양까지가 약 250km라고 하니 지구에서 600km란 부산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보다 조금 가까운 길을 세워 놓은 것이다.

 

공간을 약간 확대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졌을 때 약 4,140km라고 하니까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는 바다로 말하면 해안가 수준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 그래비티에서 두 사람의 우주인은 바다로 비교하면 가슴까지 찰까 말까한 해안가에서 표류한 것이다.

 

 

 

 

공포의 본질은 무력감

 

그래비티는 기존의 공상과학영화와는 달리 사실감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깊고 넓은 우주공간을 잘 표현했다.

 

우주선 안에서 보이는 창 밖 풍경 같은 우주공간과 광활한 우주공간을 맨몸으로 떠도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멀리서 고요한 바다를 보는 것과 험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맨몸으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이나 시각적인 차이가 크다.

 

비록 얕고 가까운 바다라도 현실의 위협은 두렵다. 반면 깊고 너른 바다라고 하더라도 멀리 있는 바다는 위협적이지 않다. 공포는 그것을 주는 대상의 크기가 아니라 대상과의 거리에서 비롯된다.

 

그래비티는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잘 활용한 영리한 영화다.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고 하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 그 이상의 공포가 어디 있으랴?

 

 

 

광장의 공포와 폐소의 공포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밀폐된 공간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베리드'(Buried, 2010)는 그래비티와는 달리 관에 갇힌 채 매장된 남자가 벌이는 필사의 탈출기이다. 6피트 깊이의 땅 속에서 고작 90분을 버틸 수 있는 산소를 가지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을까?

 

관 속에 갇힌 사람의 공포가 우주에 던져진 사람의 공포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있을까? 광장의 공포가 폐소의 공포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비티의 공포감? 그것은 우주공간이 아닌 무력감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에서 처음 공포와 무력함을 극복하지 못한 라이언을 살려낸 것은 의지였다.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곳에서는 중력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제목은 ‘Gravity’, 곧 중력이다. 공포보다 큰 살고자 하는 중력이 결국 그녀를 지구로 끌어당긴 것이다.

 

20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