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8. 8. 12:37

더 비치(The Beach) / 욕망의 섬

여행자는 관광객이 발견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발견한다.

 

- 알렉스 갈랜드(더 비치의 원작자)

 

편안한 침대에 누워 TV나 보려고 수천 마일을 날아왔단 말인가?

 

- 리처드(더 비치의 주인공)

 

 

방콕을 여행 중이던 미국인 청년 리처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카오산 로드의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대피 덕이라는 정체 불명의 사내로부터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환상의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튿날 아침 리처드는 자신의 방문 앞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지도를 발견한다. 어제 밤에 대피 덕이 말한 비밀의 섬으로 가는 지도였다.

 

리처드가 대피 덕의 방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리처드는 밤새도록 신음소리를 내던 프랑스인 커플 에띠엔과 프랑수아를 설득해 함께 섬을 찾아 가기로 한다. 대피 덕이 소개한 그 섬이야 말로 관광객은 발견할 수 없는 그 무엇인지도 몰랐다.

 

방콕에서 기차를 타고 말레이 반도를 남행한 뒤 다시 버스와 배를 타고 도착한 코 사무이. 대피 덕이 말한 그 곳은 코 사무이 근처에 있는 섬이었다. 현지인은 지도에 나와 있는 곳은 접근금지 지역이라며 근처의 다른 섬까지만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세 사람의 젊은이는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사방천지가 대마밭이었다. 감시인력의 눈을 피해 대마밭을 벗어나자 곧 이어 나타나는 절벽 끝. 천국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험했다.

 

망설임 끝에 폭포수 아래로 뛰어 내리자 비로소 에덴의 동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가 거대한 암석으로 둘러싸여 마치 호수 같이 잔잔한 해변.

 

촬영 무대인 마야 베이의 모습(영화 속 장면은 아니다)

 

섬에 홀려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머문 여행자들의 공동체가 그 곳에 있었다
.

 

'당신들은 운이 좋았어. 이제 더 이상 불청객들을 받지 않기로 대마 경작인들과 약속했거든. 우린 서로의 것을 인정하기로 했어.'

 

이 공동체는 대마를 내다 팔고 필요한 물품을 사서 운영되고 있었다.

 

리처드 일행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에 감사했다.

 

이제 세 사람은 영원한 낙원을 꿈꿀 수 있을까?

 

 

낙원이 지옥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체의 지도자 샐(틸다 스윈튼)과 함께 물품을 구입하러 바깥세상으로 나간 리처드는 섬으로 들어오기 전에 만난 자신이 섬에 대한 정보를 준 여행자들을 우연히 다시 만난다.

 

리처드는 그런 곳은 없다고 자리를 비켰지만 불청객들은 끈질겼다.

 

얼마 후 섬으로 진입을 시도한 그들은 곧 대마 경작인들에게 발각된다. 이제 대마 경작인들은 여행자들이 약속을 어겼다며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공동체 사람들은 그들만의 낙원을 지키기 위해 욕망의 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니 보일 감독의 '더 비치'(The Beach, 2000)는 인간 욕망의 끝을 보여 준 작품이다.

 

미국 청년 리처드는 방콕에서 만난 대피 덕이라는 인물로부터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리처드는 옆 방의 프랑스인 커플과 그 곳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는 전 세계로부터 온 자유여행자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다.

 

 

리처드가 본 천국이란 소수에게 독점됨으로써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낙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공동체 지도자 샐은 그들 중 누군가가 죽어 공동체의 비밀이 유지될 수 있다면 그 것을 선택했다.

 

심지어 상어에 심하게 물린 사람을 그냥 내다버리기도 했다.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이익을 보전하려면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는 언제나 다수를 희생하여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다수는 소수를 희생하여 이익을 보전한다.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더 비치의 샐을 연기한 틸다 스윈튼이 맡았다)는 생태계의 균형 유지(수요와 공급의 균형 유지)를 위해 일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실은 소수가 초과 공급(잉여생산)을 독점하기 위함이다. 역시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이 욕망을 주체하지 않는 한 천국은 없다. 문제는 인간 욕망의 크기란 아무리 희망하는 것을 공급해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비치'는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리처드 일행이 신비의 섬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해양 어드벤처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낙원의 섬이 혼란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부터 밀도감은 눈에 띄게 떨어진다.

 

리처드와 프랑수아 그리고 리처드와 샐의 육체적 관계를 풀어 가면서 긴장감을 고조하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인간의 경제적 욕망 외에는 파라다이스의 몰락 원인을 찾을 수 없더란 말인가?

 

PS 1 : 영화에서는 주인공 리처드를 미국인으로 설정했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영국인이다. 원작자인 알렉스 갈랜드는 영국 작가이다.

 

PS 2 : 영화는 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관광지 피피섬에서 촬영했지만 원작과 영화의 무대는 피피섬이 아닌 코 사무이다. 원작에서 설명한 암석으로 가려진 호수 같은 바다를 표현하기에 작은 피피섬인 피피레의 마야 베이가 가장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야 베이는 영화의 배경이 아니라 주연이다.

 

PS 3 : 리처드가 대피 덕을 만난 카오산 로드는 방콕 안에 있지만 태국 사람이 주인이 아닌 곳으로 자유여행자의 성지처럼 되어 버린 곳이다.

 

2014.8.25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