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스릴러 2015. 10. 31. 21:40

하늘을 걷는 남자 / 맨 온 와이어 - 줄 위의 인생

다큐 영화 맨 온 와이어’(Man on Wire, 감독 : 제임스 마쉬, 2008)와 최근 개봉작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폭 2cm의 가느다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4백 여 미터 높이의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위)와 '맨 온 와이어'(아래)

 

필립 패티트. 프랑스인입니다. 어려서부터 땅위를 걷는 것 보다는 줄 위를 걷는 것이 편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줄 위로 올라가더니 어느 날 가출을 해서 혼자 익힌 기술로 줄도 타고 저글링을 하며 거리에서 살아갑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

 

나무 사이에 줄을 매고 걷는 것에 실증이 날 즈음 그는 대담하게도 노틀담 사원의 양쪽 탑 사이에 줄을 잇고 공중 곡예를 선보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도전이었죠. 저메키스 감독의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는 생략되었지만 맨 온 와이어에서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의 양 쪽 아치(너비 49m)에 줄을 걸고 건너기도 하더군요.

 

시드니 하버 브리지의 좌우 아치 사이를 걷는 필립 패티트 '맨 온 와이어' 중

 

1968년 어느 날 접한 쌍둥이 무역센터 건설 소식에서 그의 꿈은 시작되었습니다. 무역센터의 완공을 기다리며 그는 무려 6년간이나 쌍둥이 건물을 건너갈 계획을 준비합니다.

 

드디어 건물이 완공되고 친구들과 뉴욕으로 건너 온 그는 무역센터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면서 건물의 구조를 익히고 꼭대기에 올라가 와이어를 걸 계획을 세웁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

 

그러나 쿠데타(예술사를 뒤바꾼다고 해서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쿠데타라고 했습니다)3개월 앞에 두고 발을 못에 찔리는 큰 부상을 당합니다. 게다가 무게가 200kg이나 되는 와이어를 42m되나 되는 두 건물 사이에 거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니었죠.

 

'하늘을 걷는 남자'

 

요즘 무개념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결말을 언급하면 지들이 무식한 건 모르고 스포일러라고 대들던데 그러면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무찔렀다고 하고 영조가 사도세자 죽였다고 하면 이게 스포일러인가요?(실제로 이런 네티즌 봤음요 ㅋㅋ)

 

반전이나 결말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라면 잘 알려진 사실을 가지고는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잘 알려진 사실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결말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며 영화의 묘미는 과정에 있다고 봐야죠.

 

'하늘을 걷는 남자'

 

주인공 필립 패티트는 197487일 아침, 높이 412m, 길이 42m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에 의지한 채 건너는데 성공합니다. 출근길의 뉴욕 시민들이 그의 쿠데타를 보고 경탄을 했죠. 필립은 그냥 건넌 정도가 아니라 빌딩 사이를 약 45분간 무려 여덟 번이나 왕복했다고 하며 줄 위에 눕기, 무릎을 굽혀 시민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기 등 갖가지 곡예를 선보입니다.

 

쌍둥이 빌딩 사이의 와이어 위에 누워 있는 필립 패티트, '맨 온 와이어' 중

 

하지만 그의 줄타기는 곡예라는 이름과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필립의 부족한 줄타기 기술을 보완해줬던 서커스 단장 파파 루디는 그에게 허리에 와이어에 연결된 안전장치를 차고 줄을 타라고 하죠. 하지만 필립은 파파 루디의 권고를 거절합니다. 그의 줄타기는 곡예가 아니라 삐끗하면 죽는 인생이었던 거죠.

 

달을 걷는 사나이 딘 포터

 

필립 패티트처럼 모험적인 인생을 살다 간 인물로 미국의 맨몸 등반가 딘 포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2,300m 절벽 꼭대기에서 윙수트를 입고 뛰어 내리다 변을 당한 그는 애견과 함께 점프 하는 동영상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딘 포터의 인생도 영화화되지 않을까요?

 

딘 포터와 그의 애견(위), 모험가의 개는 모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오르고 왜 뛰어 내리는 것일까요? 관련 이야기는 다음 칼럼을 기대해 주세요.

 

저는 하늘을 걷는 남자를 아이맥스 3D로 봤는데 손과 발에서 땀이 흐르더군요. ㅎㅎㅎ 영화는 필립 패티트 역의 조셉 고든 래빗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관련 영상이 나오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다큐 같은 느낌을 주죠. 40여 년 전의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 영화인 맨 온 와이어에서는 주로 사진으로 줄 타는 장면을 대체합니다.

 

실제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건너가는 필립 패티트, '맨 온 와이어' 중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는 필립이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걷는 장면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 월광이 나오는데 맨 온 와이어에서는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이 흐르더군요. 화면에 가득 흐르는 긴장감과 달리 달관한 필립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아니면 침대처럼 편안하다는 뜻일까요? ㅎㅎㅎ

 

실제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건너가는 필립 패티트, '맨 온 와이어' 중

 

지난 2000911일 테러에 무너지는 무역센터를 보며 필립 패티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