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 고전적 에로틱 무비를 지향하다

 

 

에로영화와 포르노의 공통점은 둘 다 섹스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에로와 포르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전 포르노가 섹스의 전부를 보여준다면 에로는 절반만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감독이 그려주지 않은 나머지 절반을 아쉽게도 관객은 스스로의 상상으로 메워야 합니다.

 

어렵게 말하지 말라구요? 야하긴 아한데 덜 야하고 더 야하고가 에로와 포르노의 차이라구요? 옳은 말입니다. 그러면 야함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ㅎㅎ

 

 

사랑과 영혼’(Ghost)을 야하다고 하면 수긍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꽤 계실 겁니다. 또 박찬욱 감독의 미국 데뷔작 스토커’(Stoker)를 야한 영화라고 하면 영화 보긴 봤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과 영혼에서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함께 도자기를 빚는 모습을 그 어떤 에로영화의 그 장면보다 에로틱하다고 여깁니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데미 무어의 뒤에 않아 함께 도자기를 빚으며 손깍지를 끼던 장면. ..

 

그러가 하면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서 매튜 구드와 미아 바시코브스카가 피아노를 합주하던 장면은 또 어떻습니까? 사실상 이 장면은 섹스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반면 고전적 에로물 애마부인을 지금 다시 본다면 아마 보다 졸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야함은 결국 얼마나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년에 개봉해 상당한 화제를 모은 언더 더 스킨의 경우, 스칼렛 요한슨의 통통한 몸매를 보정 없이 보여줬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섹시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달린 것 맞나요?

 

 

북미 박스 오피스를 초토화 시킨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에 상륙한 셈 테일러 존슨 감독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는 근래 들어 보기 어려운 헐리웃 산 에로물입니다.

 

내용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졸업을 앞둔 여대생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는 학교 신문에 실을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젊은 억만장자인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를 만납니다.

 

돈과 지성과 외모.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그레이를 보는 순간 아나스타샤는 그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들죠.

 

 

여자라면 산전수전 다 겪은 그레이도 아나스타샤의 청순함에 끌려 그녀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그레이는 자신은 사랑’(make love)이 아니라 섹스’(fuck hard)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아주 거칠고 가학적인. 그러면서 주종관계를 맺자고 하죠. 자신은 주인’(Dominant), 아나스타샤는 노예’(Submissive)가 되는.

 

돈을 주고 성 노리개를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레이라는 남성은 신사적인 면모가 있었습니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다는 거였죠. 그런데 그 과정이 마치 여성을 꽤 배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여성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합니다. 맞아요? ㅎㅎ

 

결국 아나스타샤는 그레이에게 자신을 맡기기로 합니다.

 

비즈니스로 시작했지만 언제부턴지 계약이고 나발이고 두 사람은 섹스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됩니다.

 

 

주목할 것은 두 사람의 심리입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인가요?

 

우선 그레이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데 무척 서툰 사람으로 보입니다. 섹스 도중 상대방이 자신의 몸에 손도 못 대게 하죠. 언제나 일방향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게 그러면서도 상대방인 아나스타샤를 감정의 극치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영화를 여성, 엄마, 아줌마들을 위한 포르노(다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ㅋㅋ)라고 부르나 봅니다. 아줌마들을 위한 포르노.. 참 그러네요..

 

아나스타샤는 처음부터 그레이가 세디스트라는 걸 알았을 리 없고 재력과 핸섬한 외모에 이끌렸을 것입니다. 나중에서야 그레이의 취향을 알게 됐지만 뭐 그땐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고 봅니다.

 

분명한 건 두 사람은 각자 상대방에게 마약 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이러면 사랑인가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이 처럼 사랑과 섹스, 가학적 만족과 피학적 만족을 오가는 영화입니다. 이 와중에 관객들이 초점을 잃고 발을 헛딛을 가능성이 높죠. 이 영화 뭥미?

 

 

영화는 수차례 그레이와 아나스타샤의 섹스신이 나옵니다만 감질나더군요. 한 번의 섹스신에서 폭발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나눠서 수위와 강도를 높여가며 아주 관객들 애간장 태웁니다. 보다 보니 이 영화는 영화의 진행 자체가 섹스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잘 만든 에로 영화 맞습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도대체 뭘까요? 안타깝게도 영화는 그것에 대해 끝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3부작의 원작 소설 가운데 1부를 다뤘다고 하는군요. 폭발적인 흥행에 힘입어 벌써 속편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하죠. 50가지 그림자가 무엇인지 후속편을 기대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작의 일부를 다루다 보니 영화는 마치 중간에 필름이 끊긴 듯 끝이 나고 맙니다.

 

 

청순한 여대생이 그레이와의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에서 다코타 존슨이 보여준 세밀한 표정 연기는 썩 훌륭합니다.

 

제이미 도넌은 시크한 도시남의 이미지를 나름 표현했지만 캐릭터 자체가 많은 공감을 얻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숱한 화제를 일으키며 북미에서 커다란 반응을 일으켰지만 기대보다 그 장면의 농도가 짙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주연배우는 사생활의 트라블이 일어났다고 하죠.

 

제이미 도넌은 아내의 반대로 속편에 출연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하고 다코타 존슨은 남친과 결별했다고 하는군요.

 

영화 중간에 흐르는 롤링 스톤즈의 ‘Beast Of Burden’은 이 영화가 확실히 80년대 스타일의 에로틱 무비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 이제 에로까지 복고의 바람이?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