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일흔이 다 되어 가는 노시인 이적요(박해일 분)의 집에 여고생 은교(김고은 분)가 가사도우미로 들어온다. 독거노인인 노시인의 곁에는 재능이 부족한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가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세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가 모범답안일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일을 치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을. 도대체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노인이 여고생의 싱그러움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영화 속의 대사대로 늙음은 벌로 받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시인이 아닌가?

 

여고생은 노시인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손녀처럼 따른다. 지은 시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명망 있는 시인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반면 은교와 서지우의 관계는 좀 어렵다.

 

은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가족이 없는 이적요에게 서지우는 제자 그 이상이었다. 서지우는 스승에게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대하고 이적요는 그런 제자를 친아들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은교가 끼어들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세찬 비가 내리는 밤, 은교가 어머니에게 맞았다며 울면서 이적요의 집을 찾는다. 흠뻑 젖은 교복을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시인의 눈이 자꾸만 반바지를 입은 여고생에게로 향한다.

 

그런 이적요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은교. 아침이 되었을 때 이적요는 자신의 옆구리에 붙어 있는 은교를 발견한다. 여고생은 시인의 마음 속에 처녀로 날아들었다.

 

 

 

 

그날 아침 서지우가 이적요의 집을 방문한다. ‘쟤는 여고생이라구요서지우의 말에 시인은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은교에게는 니가 선생님을 망치고 있어. 선생님은 니가 생각하는 그런 분이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서지우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서지우는 무엇 때문에 은교와 이적요의 관계에 속이 뒤틀렸을까? 그녀를 사랑했나? 아니면 문학적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은교와 스승의 관계로 인해 폭발한 것일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은교다. ‘여고생이 왜 아저씨랑 자는지 아세요? 외로우니까요은교는 서지우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여고생이 외로우니까아저씨와 함께 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은교는 서지우의 성적 팬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적요 조차 상상 속에서 은교와 섹스를 한다. 현실에서든 상상 속에서든 은교는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다.

 

이적요의 늙음은 벌이 아니며, 서지우의 욕망도 죄가 아니다. 그리고 은교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갈등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뻘의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은교 이 아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남의 집에 살짝 들어와서 흔들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철부지 여고생인가?(이적요가 은교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이적요의 정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영화가 이적요의 시각을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서지우나 은교의 마음을 읽어내기 어려운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적요 속에서 박해일을 찾기란 어려웠다. 배역에 충실해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이적요를 통해 나타내지 못했다. 굳이 일흔 노인의 역할에 삼십대의 박해일을 캐스팅할 필요가 있었을까?

 

서지우와 은교의 사실적인 정사신은 노출 수위보다 자극적이다.

 

2012.5.9